[마이크로프로세서 초보자를 위한 특별 컬럼 5]

                    책인가? 키트인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부하려는데 좋은 책 없습니까?", "대부분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특정한 키트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불편한데 키트없이 설명이 잘된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이러한 요청을 받는 경우가 있다. 정말이지 그런 책이 있으면 나에게도 좀 소개해 달라. 책만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면 그 비결을 알고 싶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숙달된 능력을 요구하는 기술 분야이다. 이를 익히는데 직접 회로를 설계하거나 프로그래밍을 수행하면서 몸으로 익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책만으로 공부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되는 발상이다.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을 생각해 보라. 시동을 걸고 기어를 저단으로 놓은 후에 악셀레이터를 밟으면 차가 출발하고, 왼쪽으로 가려면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를 책을 통해서 아는 것만으로 누구나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면 왜 운전학원이 필요하고 왜 면허시험이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책에서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실무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공부하는 의미가 없다. 이러한 실무능력을 갖추는데는 값싸고 효율적이며 우수한 기능을 가지는 키트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수없이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에서 실무 활용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컴퓨터가 그러하듯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시스템에 응용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하거나 이를 제조하는 반도체 회사에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자체가 목적이겠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게는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이다.
    키트는 이렇게 프로그래밍 훈련을 할 수 있는 장비가 되기도 하지만, 초보자에게는 하드웨어 설계를 공부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훌륭한 샘플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드웨어에 대한 자신의 불확실한 이해를 해결해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여기에 일부의 기능을 변경하거나 추가하므로써 하드웨어를 공부하는 실험장비가 되기도 한다.
    키트는 이와 같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필수적인 것이지만 책을 쓰는 저자에게도 불가피한 요소이다. 즉, 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여러가지 기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하드웨어적으로나 소프트웨어적으로 활용예를 보이려면 저자는 아무래도 실제의 응용 시스템을 제시하면서 설명하는 것이 용이하게 된다. 이때 저자는 가능하면 독자 또는 이 키트의 사용자가 쉬운 수준부터 높은 기술 수준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익혀나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려하여 키트를 설계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키트를 예로 들면서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보다 알찬 내용과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에게 서비스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부하는 초보자들에게는 꼭 키트를 함께 구입하여 익힐 것을 권한다. 혹자는 자기자신이 직접 키트를 만들어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초보자가 스스로 키트를 설계하고 만들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도사일 것이다. 기술은 머리로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손이 함께 가야만 하는 분야이다. 머리만으로 익히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과학일 것이며, 기술이라면 마땅히 머리로 익히고 몸으로 숙달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새로 익히는데는 책값뿐만 아니라 키트값 정도가 함께 투자되어야 한다. 과학이나 발명은 골방에 틀어박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것으로도 될지 모르지만, 기술은 마땅한 경제적 부담을 대가로 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소득인 것이다.

   < 주의 >  키트(kit)란 어떤 제품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나 부품을 한 셋트로 구입하여 사용자가 스스로 조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을 가리키며, 따라서 이러한 형태는 교육용 장비(training kit)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제조회사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면 그것은 이미 키트가 아니다. 이와 같이 교육용 키트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용자가 단지 이를 사용하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립하는 과정까지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또한, 초보자 입장에서 이를 설계하기가 어렵거니와 이에 필요한 부품을 시장에서 일일이 직접 구입해야 하는 어려움을 덜 수도 있으며, 사용자가 조립과정에서 필요하면 부분적으로 기능을 취사선택할 수 있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기능의 일부를 수정 또는 확장할 수도 있다는 것도 키트의 장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트레이닝 키트들은 제조회사에서 실제로는 완제품만을 판매하면서도 버젓이 키트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다. 본인도 출판사와 책의 출판 또는 키트의 판매계약을 맺을 때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적지 않은 실랑이를 벌인다. 나는 당연히 완제품 이외에 진정한 의미에서 키트나 또는 일부 부품 단위로도 판매하기를 원하지만, 출판사나 키트 제조회사에서는 언제나 영업적인 이득이나 관리상의 편리함을 앞세워 완제품만으로 판매하기를 원한다. 나 역시 그러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에 대한 서비스나 진정한 고객 감동이라는 것은 공급자쪽보다는 고객의 입장에 우선을 두는 간단한 논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출처 : 윤교수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월드  http://cafe.naver.com/mcu32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