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초보자를 위한 특별 컬럼 7] 

                    필요한 내용은 데이터 시트나 사용자 매뉴얼에 다 있다

   예를 들면 LCD 모듈에 대하여 "3번핀인 V_EE 단자는 무슨 역할을 하는 단자입니까?"라든가 80C196KC의 어셈블리 프로그램에 대하여 "DCB와 DCW라는 것이 뭡니까?"하는 부류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학생들에게서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도 그러하거니와 사이버 공간의 전문 게시판에서도 역시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우선 짜증스럽고 질문한 사람에 대하여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도대체 이렇게 정교하고 예민한 소자를 사용하면서 데이터 시트를 찾아보지도 않았다거나 아니면 데이터 시트가 있더라도 이를 읽어보지도 않고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셈블러와 같이 복잡한 기능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사용자 매뉴얼을 무시하고 무대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적어도 이러한 데이터 시트나 매뉴얼에는 관심도 없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읽기가 귀찮아서 남에게 질문함으로써 요점만을 손쉽게 알아내고자 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함에 이러한 질문을 받는 사람은 "마땅히 당신이 읽고 공부해야 할 것을 왜 내가 해줘?"라는 생각이 들게 되니 짜증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러한 경우도 있다. 요즈음은 통신이 발달하여 누구나 손쉽게 기술자료나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좀 덜하지만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각종 반도체 소자의 데이터 북이 언제나 재산목록의 선두를 차지하리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모았다. 때로는 반도체 회사에서 얻기도 하고 때로는 구입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어느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 데이터 북을 그냥 무단으로 계속 점유하여(?) 내것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의 책꽂이에는 상당 부분이 이러한 데이터 북으로 채워져 있었고, 이것들은 나의 일을 도와주는 귀중한 자료였음은 물론이고 언제나 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풍족하기 그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 데이터 북을 절대로 빌려주지 않는 것을 신념으로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간혹 내게 와서 기술자료를 요청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빌려주게 된다. 그것은 학생들이 감히 스승인 나의 책을 떼어먹지는 않을 것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시골에서 학생들이 이러한 기술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니 할 수 없이 내것이라도 빌려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십중팔구는 내게 자료를 빌리러 찾아왔다가 막상 내가 그 자료를 꺼내놓으면 "교수님 됐습니다..." 하면서 그냥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데이터 북이 모조리 영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영문으로 되어 있는 기술자료는 처음부터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써 한글로 번역된 자료를 찾으려 하지만 그런 자료가 있을 턱이 없다. 생각해 보라. 누가 반도체 데이터 시트를 한글로 번역하고 있겠는가를. 이를 능히 읽을 수 있는 엔지니어들은 굳이 이를 한글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번역하고 있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고, 이를 번역하고픈 사람은 번역은커녕 읽을 능력도 없을 것이니... 당연히 이러한 기술자료는 원문 그대로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생각해보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말도 안되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중에는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스스로 읽지 못하니 부끄럼을 무릅쓰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엔지니어로서의 기본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일본어나 독어, 불어도 아니고 영어로 된 자료를 스스로 읽을 수 없다고 해서야 어찌 전문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전자분야의 데이터 시트나 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매뉴얼이라는 것에 사용되는 영문은 대부분 중학교 수준의 영어에 불과하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아서 회사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중에도 이 자료를 가지고 퇴근하여 밤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사례까지 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하루 이틀 영한사전과 씨름하면서 날밤을 새더라도 이 산은 스스로 넘어야만 하는 것이다. 스스로 한번 산을 넘고 보면 그 다음에 다른 산을 만나더라도 능히 자신의 힘으로 넘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산을 넘어본적이 없는 사람은 산이 두렵고 산을 만날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반도체 소자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중요 사양은 대부분 데이터 시트에 모두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MPU, MCU들이나 또는 주변 LSI들은 이것만으로는 사용할 때에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사용자 매뉴얼이나 어플리케이션 노트를 제공한다. 오늘날 이러한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해당 메이커의 인터넷 웹사이트에 제공된다. 따라서, 사용자는 무조건 이를 사용하기 전에 해당 자료를 다운받아서 읽어보아야 하며, 일을 수행하다가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이에 관한 자료가 추가로 제공되고 있는지 해당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메이커는 자료의 오류나 소자의 결함이 발견될 때마다 이에 관한 자료나 해결방법을 웹사이트에 곧바로 제시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항은 우리가 어셈블러, 컴파일러와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 툴이나 기타 유틸리티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 툴은 매우 복잡한 문법적 사항과 실행 옵션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사용함에 있어서 해당사에서 제공하는 사용자 매뉴얼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예전에는 이러한 사용자 매뉴얼이 대부분은 책의 형태로 제공되어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지 않는한 입수가 어려웠기 때문에 복사하여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대부분 사용자 가이드가 책으로 제공되기 보다는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온라인 도움말 형태로 제공되며, 경우에 따라서 이러한 도움말 파일은 웹사이트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사용자는 예전보다도 오히려 더 쉽게 이러한 사용자 가이드를 구할 수 있으며, 이것이 어렵다면 자신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는 다소 버전이 다른 사용자 매뉴얼이라도 구하여 읽으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버전업이 되더라도 일부의 기능이 변경되는 정도이므로 버전이 다른 매뉴얼을 이용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초보자일수록 기술자료에 충실해야 한다. 숙련된 엔지니어라면 경험적으로 판단하여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데이터 시트나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은 노하우까지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초보자는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문헌적 자료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기술자료에 충실하게 일을 했는데도 뜻밖의 결과가 나오거나 기술자료의 설명이 애매하여 이해하기 어려워서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 다른 선험자들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자료가 없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처럼 자료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자료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고서는 엔지니어로서의 기본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초보는 세월이 간다고 해서 도사가 되지 않는다. 자료를 충실히 읽고 여기에 자신의 오랜 경험이 축적될 때 초보도 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윤교수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월드  http://cafe.naver.com/mcu32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