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초보자를 위한 특별 컬럼 11] 

                    작품을 만들지 말고 상품을 만들어라!

   전기 전자 분야 회사의 개발실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대학원이나 연구소에서 신제품 또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라면 누구에게나 상업용 제품 또는 실험용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지켜야 할 기본적이고 이상적인 원칙이 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연히 동작하게 되는 발명품을 만들지 말고 체계적으로 설계된 개발품을 만들라."는 것이며 "작품(作品)을 만들지 말고 상품(商品)을 만들라."라는 것이 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요약하여 보면

   첫째로, 보편성(普遍性)이나 재현성(再現性)이 있어야 한다. 동일한 도면 및 지시에 따라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다면 어느 누가 만들더라도 동일한 성능과 특성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만드는 제품마다 특성이 들쭉날쭉하다면 이것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기술 개발로서의 일반성을 인정받을 수도 없게 된다. 제품이 이러한 보편성이나 재현성을 가지게 되려면 설계에서 제작까지 모든 단계에서 철저한 이론적 바탕과 치밀하게 계산된 설계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이론이 무시되고 시행착오 끝에 우연히 동작하게 되어 만들어진 제품은 나중에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둘째로, 신뢰성(信賴性)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앞의 보편성이나 재현성과도 관련이 있는 말이지만 올바르게 설계된 제품이라도 주위의 다양한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여러가지의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았거나, 또는 검증되지 않은 재료나 부품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면 신뢰성을 갖기 어렵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러한 사례는 실험실에서는 잘 동작하는데 현장에 나가면 엉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그것이 작품일 수는 있으되 제품이 되지 못하며, 이러한 제품으로서의 신뢰성 부족은 설계자에게는 물론이고 회사에게도 치명적인 신뢰성의 손상을 주게 되고 그것은 곧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제품이 신뢰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기본 원칙을 지켜가면서 이론적인 바탕에서 설계하여야 하고, 설계 단계에서 실제의 동작 환경을 고려한 안전 여유를 두어야 하며, 올바르게 검증된 부품을 사용하고 충분한 현장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를 다시 설계 단계로 피드백시켜 설계를 수정하여야 한다.

   셋째로, 현실성(現實性)과 경제성(經濟性)이 있어야 한다. 제품이 현실에서 실용적 가치가 없거나 또는 구하기 어려운 부품 또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야 하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면 이는 설계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예술 작품에서는 오히려 유일의 독창성과 비현실성이 보다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지만, 공학과 기술에서의 제품이나 상품의 경우에는 이러한 점이 그것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특성은 물론 회사의 상품에서 더욱 강조되겠지만 공학적인 제품 개발에서도 역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라 할 것이다. 현실성이나 경제성을 무시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려 한다면 그것은 공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과학이요 마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은 우리가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거나 평소에도 자주 느끼는 사항들이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세계에 들어가 보면 이를 신념처럼 생활처럼 지키려는 엔지니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한마디로 엔지니어들의 되지도 않는 고집 때문이다. 필요할 때는 나의 지식과 기술을 밖으로 드러내어 다른 사람과 토론하고 평가를 받으려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경쟁 사회에서 자신만 손해를 본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안으로 닫아놓는 엔지니어는 점점 더 고집에 빠지게 된다. 열린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도 훌륭한 사항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닫힌 사람은 외부에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부를 단속하는데 더 치중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지식과 기술이 뒤쳐지게 된다. 뒤떨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고집밖에는 없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엔지니어의 자존심이라고 미화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자존심이란 사치스런 표현일 뿐이다. 자존심이란 그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알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는 만큼 남의 가치도 존중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필수 요소이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옛날의 간신배와 같은 부류이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겉으로 강하고 안으로 약하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작품을 만들어 놓고도 이를 상품이라고 고집하는 엔지니어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만심이 강한 사람일 뿐이다. 자신의 잘못에 가혹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늘 메꾸어 가려는 열린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진정한 자존심이 있는 엔지니어다. 그런 엔지니어가 만든 작품이라면 그것은 곧 상품이요 명품(名品)일 것이다.